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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

허난설헌의 생애와 작품

by 호기심많은 부가옹 2023. 11. 7.

역사학자들은 우리에게 더 유명한 신사임당보다 허난설헌을 더 높게 산다는 얘기를 들었다. 상대적으로 낯선 허난설헌의 생애에 대해서 알고 싶어졌다.

 허난설헌(許蘭舍軒)은 권위주의와 가부장적인 사회분위기에 푹 젖어있던 조선시대 조선시대에 그야말로 낭중지추처럼 활약한 뛰어난 여성 시인과 화가이다. 하지만 그의 삶은 불행했다.

 

1. 어린 시절의 허난설헌

허난설헌의 본명은 허초희이다. 허난설헌은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글재주와 아름다운 용모로 주목 받았다. 그녀를 아꼈던 아버지 허엽은 아들과 차이를 두지 않고 오빠와 동생 사이에서 글을 배우게 했고, 허난설헌은 뛰어난 기억력과 글쓰기 능력으로 가족들을 놀라게 했다. 8세 되던 해 작품을 창작하여 신동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한다. 이에 더해 아버지는 직접 글을 가르치고 서예와 그림도 가르칠 정도로 허난설헌을 아꼈다 한다.

또한 동생의 재능을 아끼던 오빠 허봉과 허균이 친교가 있던 시인 손곡 이달에게 시와 글을 배울 수 있게 했다. 그 아버지 허엽은 그녀의 재주를 아끼며 직접 글을 가르치고 서예와 그림도 가르쳤습니다. 이후 자호를 난설헌또는 난설재으로 지었다.

 

2. 불행한 결혼 생활

15세에 안동김씨 김성립과 결혼했지만 부부관계는 화목하지 못했다.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가 그녀의 뛰어남을 끌어안지 못했던 듯하다. 그녀의 뛰어난 재능을 받아들일 수 없었는지 김성립은 허난설헌을 피하여 부부관계가 좋지 않았고, 남편이 관직에 나간 후에는 남편은 밖으로 돌았고 허난설헌은 시어머니의 구박에 시달렸다.

한번은 남편이 모임에서 둘을 마신다는 소문을 듣고 허난설헌이 시를 지어서 이를 비판했는데, 김성립의 친구들이 뛰어난 글재주에 탄복하였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남편이 방탕한 생활을 하는 중에서도 딸과 아들을 두었는데, 두 자식이 해를 이어 연달아 죽고, 시어머니와의 갈등은 점점 심해졌다.

자식이 죽은 슬픔과 혼자 밤을 보내는 외로움은 그의 섬세한 감성을 담아 시로 전해진다.

또 허난설헌은 아버지가 객사하고 오빠 허봉이 이이를 비방한 후 귀양 가게 되고, 동생 허균도 귀양을 가게 되는 등 불행이 계속되자 삶의 의욕을 잃고 자신의 작품들을 소각했다. 그 후 많은 한과 원망을 가득 안은 채 스물일곱의 젊은 나이에 숨을 거두었다. 그 후 허균의 노력으로 남은 작품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살아있는 동안 그녀는 삼한(三恨)’, 세 가지 한탄을 노래했다고 한다. 첫째는 조선에서 태어난 것이요, 둘째는 여성으로 태어난 것이요, 셋째는 남편과 금슬이 좋지 못한 것이라 한다.

 

3. 허난설헌의 작품

허난설헌은 풍경화와 수묵담채화, 난초화 등의 그림 작품뿐만 아니라 섬세하고 감동적인 시작품도 남겼다.

8세 때 쓴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은 신선세계에 있다는 광한전 백옥루의 상량식에 초대받았다고 상상하면서 지은 이야기이다. 신선에 대한 책을 많이 읽었는데 거기에 풍부한 상상력을 결합시켜 이 글을 지었다.

종이에 채색으로 그린 앙간비금도는 날짐승을 부러워하며 쳐다본다는 뜻이라 한다.

강릉에서 가족과 함께 생활하던 유년 시절을 그린 그림으로 추정된다.

그림에는 왼쪽에 허난설헌의 이름과 함께  '한견고인서(閒見古人書)'라는 이름이 적혀있는데, “한견고인서는 한가할 때에는 옛사람의 글을 읽으라는 뜻이다. 이 그림은 여성에게 억압적이었던 조선 사회에서 여성의 자아가 투영된 최초의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조선시대 문인화에 여자아이가 그려진 최초의 그림으로 허난설헌이 자신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사회의 모순과 가정의 불행한 사건의 연속 때문인지 허난설헌의 시 213수 가운데 신선세계로 들어가고 싶다는 내용이 128수나 된다. 현실의 삶이 괴로워 도피처가 필요해 보이는 그녀가 안쓰럽다.

 

4. 마무리

사람의 삶을 결정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태어난 나라이다. 반 이상을 차지하는 듯하다. 가난과 전쟁이 없는 현재 우리나라에 태어났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엄청난 행운아다. 지금 태어났으니 하기 싫은 일은 최대한 하지 않고 큰소리도 쳐가며 살아간다. 내가 조선시대에 태어났거나, 아프리카 빈민국에 태어났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나라고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구시대, 그 지역 사람들이 사는 데로 살았을 것이다.

그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그냥 살면 그나마 정신적으로는 덜 괴롭다. 이런 삶이 아닌 다른 삶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버렸지만 그렇게 살수 없다는 것을 알면 그 상실감과 괴로움은 말도 못할 것이다. 그를 품어주지 못한 김성립이 답답하지만 그는 조선시대의 양반가 남자일 뿐이었다.

조선시대 여인으로 태어난 허난설헌이 안타깝고, 애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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