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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

강조의 정변에 대하여

by 호기심많은 부가옹 2023. 11. 27.

1. 개요

고려 초기의 권신이자 문관이었다.

목종의 큰 신뢰를 받았지만 오히려 정변을 일으켜 목종을 시해하고 현종을 옹위한 인물이다. 거란이 고려를 침입했을 때는 직접 출정하여 선전하다가 통주에서 패배하였고 요나라 성종의 항복 회유를 거부하고 전장에서 사망하였다.

목종으로부터 큰 신뢰를 받았으나, 되레 정변을 일으켜 목종을 시해하고 현종을 옹립했다. 거란이 고려를 침범했을 때는 직접 출정했고, 초반에는 선전하다가 통주 전투에서 패배했다. 요나라 성종의 회유를 받았지만 완강히 거부해 전장 한복판에서 최후를 맞았다.

 

2. 출신

반역자이다 보니 그의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그래서 정확한 출신지는 알 수 없지만 신천 강씨라는 설이 유력하고 실제 신천 강씨 쪽에서는 강조를 자신의 조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 설을 받아들이자면 황해도 신천이 출신지일 가능성이 높고 고구려의 호족계열 인물이라고 본다.

 

3. 강조의 정변

강조가 서북면 도순검사 직을 맡아 북방 군대를 순찰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 왕은 목족이었다. 목종은 모친인 천추태후와 김치양이 자신을 제거하려한다는 것을 알고 자신을 호위하도록 강조를 불렀다. 그런데 강조는 오히려 목종을 폐위시키고 그때 17세였던 대량원군을 현종으로 옹립했다.

목종을 폐위하여 양국공으로 끌어내린 부하를 보내 목종을 시해한다. 또한 천추태후를 황주로 유배시키고, 김치양과 그의 아들 등을 포함한 다수를 귀양 보내거나 처형하여 자신에게 걸림돌이 될 이들을 모두 제거한다.

그리고 본인이 이부상서 및 참지정사로 승진해 스스로 요직을 차지한다.

 

강조의 목종 폐위 이유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첫째는 강조가 이미 목종이 시해되었다는 거짓정보에 자신의 군을 이끌고 개경근교까지 진군하였는데 본인이 반역으로 몰릴까 두려워 아예 폐위했다는 설이다. 두 번째는 강조가 평상시 우유부단하고 추문이 많았던 목종에게 불만이 있다가 기회가 생겨 새로운 왕을 세우기 위해 폐위했다는 설이다.

 

4. 2차 고려 거란 전쟁

그런데 문제는 고려를 침입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던 거란, 요나라 성종은 정변을 일으킨 강조의 죄를 묻는다는 명분으로 4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략했다.

그러나 이는 명분일 뿐 사실은 거란의 맞수였던 송나라와 잠시 휴전 중인 틈에 고려를 공격하여 후방을 든든히 하려는 목적이 있다. 중원을 차지하기 위해 먼저 고려를 쳐야했는데 고려가 내부 상황으로 어지러워지자 이를 틈탄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강조는 군권을 위임 받은 후 30만 대군을 소집하여 직접 출정하였다. 최고의 실권자가 되었음에도 개경에 머무르며 명령만 내리지 않고 최고 사령관 직을 맡아 직접 출전했다. 거란군에게 포로로 잡혔을 때에도 항복을 하지 않고 고려의 장수로서 책임감을 거지고 끝까지 항전했다.

 

강조는 왕을 폐하고 새로운 왕을 세워서 사실상 최고 권력자에 올랐음에도 권력 기반이 몹시 약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상황에서 거란이 자신이 행한 정변을 핑계로 침략했기 때문에 자신의 입지 강화를 위해 직접 출정했다는 설도 설득력이 있다.

 

초반에는 승리를 거두다가 통주 전투에서는 강조가 지휘하던 30만 고려군이 거란군에게 대파당할 당시 전사자만 3만 명이 발생했고 많은 지휘관들이 그 자리에서 전사했다.

 

 

고려사를 보면 거란은 강조를 이불에 싸서 데리고 갔다고 한다. 거란주가 강조에게 신하가 될 것을 종용하였으나 강조는 자신이 고려 사람임을 강조하고 다른 나라의 싵하가 될 수 없다고 답한다. 다시 물었으나 또 같은 대답을 했다 한다.

다음에는 살을 베는 고문을 가하면 물었으나 같은 대답을 반복하였다.

거란주는 결국 강조를 죽였다.

 

5. 평가

 

강조가 반역을 일으키기는 했지만 본인이 왕이 되려고 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왕의 뒤에서 실권을 차지하고 국정을 운영하려는 야망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강조가 실권을 차지하고 자신의 뜻대로 뭔가를 펼쳐보기도 전에 거란과의 전쟁이 발발하였고 이 전쟁에서 목숨을 잃었기 때문에 강조가 정변이후에 어떤 일을 할 야망을 가졌는지 알 수 없다. 최고 권세가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직접 출정한 일은 호평 받을 만 하다.

내치 부분에서는 강조가 의도하지 않은 효과가 있었다. 강조는 집권이후 혼란스러운 국정의 원인이었던 천추태후와 김치양을 모두 제거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전쟁에 나가 사망하면서 현종은 정적이 모두 제거된 상태에서 자신의 정치를 펼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반역자다 보니 고려사에도 반역열전에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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