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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

<강감찬>에 대해

by 호기심많은 부가옹 2023. 11. 23.

1. 개요

우리나라 역사에서 살수대첩, 한산대첩과 함께 강감찬의 귀주대첩을 3대첩으로 친다. 고려거란전쟁이라는 드라마를 시작한 김에 귀주대첩으로밖에 모르는 강감찬의 삶을 대략적이라도 살펴보려고 한다.

 

2. 출생과 성장

강감찬은 고려 정종 3년이 되던 948년에 태어났다. 한 밤중 시흥군으로 들어오던 한 사신이 큰 별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사람을 보내 찾아보니 별이 떨어진 집에 며칠 전 사내아이가 태어났다고 한다. 그 아이의 이름이 바로 강감찬이었다. 강감찬의 아호는 은천이다. 강감찬의 부친은 왕건을 도와 고려 건국에 공을 세워 삼한벽상공신이 된 강궁진이다. 고려사에 따르면 강감찬이 어려서부터 공부를 좋아했다고 한다.

 

3. 활동사항

이번에 강감찬에 대해 알아보기 전까지 귀주대첩으로만 알았기 때문에 당연히 무관이라 생각했는데, 강감찬은 진사시에 합격하고 복시를 장원으로 통과한 문관이었다.

 

1010(현종 1), 거란이 30만 대군을 이끌고 두 번째로 고려를 침략하였고 대비를 못했던 고려는 패전을 거듭했는데, 이때 강감찬은 왕에게 끝까지 항전할 것을 간하였고 현종은 강감찬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강감찬의 권고를 받아들여 현종은 신하들과 함께 나주로 피신했다. 그 사이 거란군은 계속 남하하였는데 이때 고려군을 이끈 장수는 양규였다. 양규는 게릴라전등을 이용해서 거란을 크게 무찌르며 선전했고 전투의지를 잃은 거란군은 1011년 정월에 퇴각했다. 그 후 1018년 현종 9년에 거란이 다시 고려를 침략했을 때 강감찬은 장수로 전쟁에 직접 참전하였다. 이때 귀주에서 거란군을 대파하고 승리하였다.

 

4. 거란의 3차 침입

거란의 2차 침입이 마무리 될 때 화의 조건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고려왕이 거란으로 입조하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서희가 뺐었던 강동 6주를 반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종은 병을 핑계로 거란에 가지 않았고 강동6주 반환 요구도 들어주지 않았다.

이에 거란은 강동6주 탈환하겠다는 핑계로 소규모 전투를 일삼다가 1018년 소배압을 대장으로 삼아 3차 침입을 강행했다.

 

3차 침입 때는 2차 침입 때와 양상이 달랐다. 고려 조정은 국방의 수비를 한층 강화하여 전쟁에 대비하여 20만 대군을 양성해 놓았었다. 현종은 이 20만 군대를 이끌 장수로 강감찬을 지명했다.

 

강감찬은 강민첨을 부원수로 삼아 곳곳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특히 흥화진 전투에서는 뛰어난 전략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흥화진 주변의 지형을 꼼꼼히 살펴 물길을 막고 기병을 12천기를 산 속에 매복시켰다. 그리고 거란이 강을 건너기 시작하자 물길을 뚫어 거란군을 물로 쓸어버렸다. 그리고 강을 벗어나 도망치는 거란군은 매복했던 기병으로 무찔렀다. 당시 강감찬의 나이는 70세였다.

 

5. 귀주대첩

소배압의 거란군은 흥화진에서 패하고도 남하를 계속했다. 강감찬은 군대 1만 명을 미리 보내 개경 방어를 지시하고, 개경 근처의 작물을 미리 거두고 성 밖에 거주하는 백성들을 성안으로 피신시켰다.

지칠 대로 지쳐 개경에 도착한 거란군은 마을이 비어 군량미를 구할 수 없어 퇴각을 결정했다. 강감찬은 퇴각하는 거란군을 노려 곳곳에 군을 매복시켰다가 공격하였다. 그러다 압록강 이남 청천강 이북에 있는 귀주에서 거란군과 전면전을 벌이게 되었다. 귀주에서 벌인 전투에서 살아 돌아간 거란군이 몇 천되지 않을 정도로 치열한 전투였다. 겨우 살아돌아간 소배압은 관직에서 쫓겨났다.

 

5. 고려 부흥의 밑거름

 

고려가 10만 대군의 거란을 물리치자 거란은 고려의 위상을 인정하고 화친을 청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여진이나 말갈과 같은 북방의 다른 세력과도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 국방이 안정되자 국내의 안정적인 발전을 이룩할 여력이 생겼고 고려의 전성기가 시작되게 된다. 이것이 귀주대첩을 역사적으로 높게 평가하는 이유이다.

 

거란을 물리친 강감찬의 귀주대첩 이후귀주대첩이후에 왕은 은퇴를 청했으나 현종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사흘에 한 번씩만 출근하면서 왕을 계속해서 보필했다. 북방에 대한 경계 강화를 위해 개성 외곽에 성을 쌓을 것을 주청하기도 했다. 고려 최고 관직인 문하시중의 자리까지 올랐던 강감찬은 84세의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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